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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월 소개자료

백초월(1878~1944)

거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림 내에 항일투쟁의 거점인 한국민단본부(韓國民團本部)를 설치함과 동시에 국내 각 사찰에서 모금한 군자금을 상해 임시정부 및 만주지역의 독립군에 보낸 승려가 있었으니, 그는 백초월(白初月)이다.

백초월의 독립운동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킨(혁신공보)발간, 임시정부 성립 축하 시위, 승려독립선언서 작성 및 의용승군 조직, 일본의회에서의 독립청원 사건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백초월은 독립운동을 수행하다 일제에 피체되어, 수감중 갖은 고문을 받아서 반미친 상태의 정신병자로 내몰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독립운동은 멈추질 않았다. 그는 일제 말기 신의주를 거쳐 만주로 가는 기차에 ‘대한독립만세’라는 낙서를 쓴 사건(1939.10)에 연루되어 일제에 체포, 구금, 수감 등의 가혹한 악형을 받았다. 마침내 백초월은 1944년 6월 29일, 청주형무소에 수감중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이러한 백초월의 행적은 우리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더욱이 그는 1915년 중앙학림이 개교할 당시 불교계가 내정한 초대강사이었으며, 그즈음 지리산 영원사의 주지였다. 이는 그가 불교계에서 그의 경학 실력을 옥인할 정도의 강백이었음을 말해주는 단서이다. 그의 경학에 대한 실력은 1935년 봉원사가 강원을 열 때 그를 강사로 초빙하였음에서도 확인된다. 백초월의 독립운동은 정부에서도 그의 공을 기려 1986년에는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품격을 재심하여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2009년 5월 26일, 서울 진관사의 칠성각에서 백초월이 숨긴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독립운동 자료(태극기 등)가 발견되었다. 이후 조계종 등 에서는 백초월과 발굴 자료에 대한 학술세미나 및 발견된 태극기를 주제로 기념 전시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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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최종수정일202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