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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동 밥할머니 이야기

불광동 밥할머니 이야기

밥할머니는 불광리, 즉 연신내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산밑 마을(지금의 수양관 아래쪽 마을) 부근에서 대대로 집성촌으로 살아온 해주오씨(海州吳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남달랐고, 생김새는 키가 호리호리하고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단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큰 일을 할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저 처녀는 큰 부잣집의 맏며느리감' 이라는 소리를 자주 했다고 했는데, 과연 성장하여 인근에 있는 문씨(文氏)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세월이 흘러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할머니는 1592년(선조 25년) 4월 왜군이 부산으로 침입한 후 파죽지세로 양산(梁山)을 거쳐 상주(尙州) 등으로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밥할머니는 단신으로 앞장서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이 강산을 내가 지키자”라고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섬거적과 새끼줄을 수없이 많이 만들게 하였다. 이것을 삼각산 노적봉으로 가지고 가서 노적봉을 둘러싸게 하였다. 멀리서 일본군이 볼 때 마치 쌀가마니를 쌓아둔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이 일을 마친 후 밥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 조용히 하시오, 왜군들에게 이 노적봉을 꼭 한번 사용할 때가 올 것이요.”하고 하였다.

이후 조선은 명나라에게 원군을 요청하였고, 이여송(李如松)이 지휘하는 명나라 군대는 조선군과 연합하여 빼앗겼던 평양성을 탈환하고, 그 여세로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한양을 목전에 두고 1593년(선조 26년) 1월 27일 양군 연합군은 고양 벽제관 해음령고개에서 매복한 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애석하게도 대패하였다. 이때 우리 군이 퇴패(退敗)한 고개라 하여 이 고개를 퇴패고개라고 하는데, 후일 와전되어 지금은 ‘되박고개' 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왜군이 이후 고양 창릉내에 진격하여 물을 마시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개울물이 희부연 색깔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왜군들이 물 마시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마침 창릉내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물이 뿌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노적봉을 가리키며 “지금 저 산에는 조선군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주둔해 있소. 저 군량미들을 쌓아놓은 것을 보시오. 아마 지금 저녁시간이라 쌀 씻은 뜨물이 흘러 이 냇물이 흐려진 것 같소”라고 대답하고는 총총히 자리를 떠나 사라졌다. 왜군들은 이 이야기를 듣자 두려움에 떨면서도 목의 갈증이 심한지라 허겁지겁 개울물을 마셨고, 말에게도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사실 그 개울물은 삼간산 밑 개천 상류쪽에서 생석회를 풀어 흘려 보낸 물이었다. 생석회물을 마신 왜군은 물론 기마병의 말까지 모두 회독(灰毒)으로 심한 복통을 일으켜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더군다나 노적봉에 있는 식량이 풍부한 조선의 대군(大軍)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결국에는 퇴각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밥할머니는 권율장군의 행주대첩 때에는 인근 마을의 부녀자들을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들어가 치마 위에 덮치마를 만들어 두르고 주변의 돌들을 치마폭에 담아 날라 행주치마의 설화를 낳게 하기도 하였다. 이런 혼란한 전쟁의 와중에서도 밥할머니는 인근 동리의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아군들의 밥을 일일이 만들어 나눠주었고, 이런 연유로 오씨 할머니를 밥할머니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밥할머니는 이후 전멸 위기에 놓인 아군을 구출한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져 민간신앙에서 높이 추앙되었다. 본래 밥할머니의 석상(石像)은 삼각산 노적봉이 잘 보이는 창릉 모퉁이에 있었는데, 선조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밥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시대 초기에 일본인들이 국도 길 옆에 서 있는 밥할머니 석상의 내력을 알고는 석상 머리 부분을 망치로 깨뜨려서 머리가 없는 불구의 모습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목을 잘라도 분이 안 풀린 이들은 석상을 땅속 깊숙이 묻어 버렸는데, 해방 직후 뜻 있는 사람들이 찾아 다시 세웠다. 지금은 고양시 삼송동 통일로 주변, 일명 숫돌고개 중턱의 도화공원 내로 1993년 옮겼다. 이 밥할머니의 실제 묘가 불광동 150번지에 최근까지 있었으나, 1976년 자손들에 의해 화장되었다고 한다. 밥할머니의 재실이 진관외동 186-2 폭포동 싱아굴에 있었는데, 1957년경 화재가 나서 전소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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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최종수정일2022.01.23